포옹이 뇌를 만든다
어린 시절 포옹은 뇌의 물리적 구조를 만드는 필수 영양소다. 엄마의 '안전 기지'와 아빠의 '도약대', 서로 다른 포옹의 뇌과학적 효과를 살펴본다.
1960년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인구 증가를 위해 낙태와 피임을 금지시켰다. 의도대로 태어나는 아기의 수는 크게 늘었지만, 대다수 가정은 아이를 부양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 부담은 결국 양육 포기로 이어졌고, 수만 명의 아이들이 열악한 고아원에 수용되었다. 보육사들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먹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안아주거나 눈을 맞추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은 그저 침대에 멀뚱멀뚱 눕혀져 있었다.
훗날 과학자들이 이 아이들의 뇌를 정밀 검사했을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포옹이라는 영양소
검사 결과, 아이들의 뇌 발달은 또래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었다. 특히 정서와 인지를 담당하는 전두엽 영역이 심하게 위축되어, MRI 영상에서 뇌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어린 시절의 신체 접촉과 포옹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해주는 행위가 아니다. 뇌의 물리적 구조를 형성하는 필수 영양소에 가깝다. 음식이 몸을 키우듯, 포옹이 뇌를 키운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포옹의 뇌과학적 효과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본격화되었고, 최근 연구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아버지의 포옹과 어머니의 포옹이 아이의 뇌에 서로 다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포옹은 보통 어머니가 아이에게 더 많이 해주니 더 큰 영향을 줄 거라 기대하기 쉬운데, 오히려 아버지의 포옹이 더 중요한 영역도 있었다.
엄마의 포옹 - 안전 기지
엄마의 포옹은 주로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에 특화된 뇌 회로를 활성화한다. 아이의 불안을 낮추고 심박수를 안정시키며, 몸이 ‘쉬고 회복하는’ 모드로 전환되도록 돕는다. 공포와 불안을 관장하는 편도체의 과잉 반응을 억제하여, 아이가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애착 이론에서는 이를 ‘안전 기지(Secure Base)’라 부른다. 아이가 바깥세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돌아와 쉴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것이다. 이 안전 기지가 탄탄하게 형성된 아이는 훗날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자기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잘 발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빠의 포옹 - 도약대
아빠의 포옹은 좀 다르다. 흔히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거나, 몸을 들썩이거나, 가벼운 장난이 섞인 ‘역동적 접촉’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거칠고 활동적인 신체 놀이(Rough-and-tumble play)는 아이에게 사회적 회복탄력성을 길러 준다.
예를 들어 아이와 서로 간지럽히기를 하다가 아이가 흥분해서 아빠를 때리면, 아빠는 놀이를 멈추고 “그러면 안 돼”라고 알려준다. 반대로 아이가 울 것 같으면 아빠가 강도를 조절한다. 아이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의 반응을 바꾼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흥분과 진정을 반복하며 ‘적절한 선’을 지키는 연습을 하는 셈이다.
이는 아이가 외부 세계로 나아가 모험을 즐기도록 독려하는 ‘도약대(Launchpad)’ 역할을 한다. 안전 기지가 “돌아올 곳이 있으니 괜찮아”라는 메시지라면, 도약대는 “나가서 부딪혀 봐도 괜찮아”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사회적 관계에서의 자신감과 문제 해결 능력은 이런 경험 위에서 자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루에 몇 번의 포옹이 필요할까
가족 치료의 선구자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하루 4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유지를 위해서는 8번, 성장을 위해서는 12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출처: 동아일보
포옹은 보통 엄마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아이의 뇌는 엄마의 포옹과 아빠의 포옹 양쪽 모두를 필요로 한다. 하나는 안전 기지를, 다른 하나는 도약대를 만들어 주고, 이 둘이 합쳐져야 아이는 세상을 안전하게 느끼면서도 용감하게 탐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